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길게 하품하며 지나는 태양과 빼곡이 줄지어 있는 나무들 사이로 힘겨이 들어와 살폿 머물다 가는 바람외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산속에 자리한 마을. 불행을 모르기에 행복조차 모를 것 같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러나 언제나 벗어날 수 없는 우울함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어-이. 이젠 돌아가야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이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조금만 더 있다가."
"괜히 욕심부리지 말고. 겨울산은 해가 금방 진다고."
약간의 두려움을 담은 목소리에 다른 목소리의 주인공도 어기적 일어나 산을 내려갑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나무를 하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것은 바로 마을 근처 숲속에 사는 괴물들이었습니다. 해가 지고 나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는 괴물들 때문에 사람들은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붉게 타오르던 여운이 가라앉고 나면 차가운 밤이 시작됩니다. 그 밤을 지배하는 것은 마을 사람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괴물들입니다.
"아이씨. 뭐 재미있는 일 좀 없나? 요즘은 인간들이 도통 저놈의 마을에서 나오지를 않으니....."
추석이 다가오자 마귀들 중 하나가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번 추석때에도 분명히 모여서 즐겁게 놀텐데 우리가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잖아."
"그래 맞아. 이번 추석때 우리도 마을로 내려가서 그들을 방해하자구."
"좋아, 좋아."
추석날 밤이 되었습니다. 둥그런 달이 떠오르자 마귀들은 뭉쳐서 마을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놀라하는 모습을 즐거워하고, 사람들이 준비한 음식을 땅에다 버리고, 심지어는 마을 곳곳에 불까지 질렀습니다. 마귀들은 장난치느라고 그만 해가 뜨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마귀들은 해가 있으면 힘을 못쓰기에 서둘러서 숲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너무 서두르던 나머지 뱀피는 나무에 다리가 걸려 넘어지고 말았답니다.
"아야야!"
다리가 삐었는지 뱀피는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같이 가요, 저좀 도와 주세요!"
뱀피는 열심히 다른 마귀들을 불렀지만 마귀들은 뱀피를 놓아둔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해는 점점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뱀피 같은 흡혈귀들은 햇빛을 받으면 녹아버리기에 서둘러 숨어야 했습니다. 뱀피는 창고로 숨었습니다. 밤새 장난치고 다녔었기에 뱀피는 피곤하여 창고에서 곧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창고로 들어오는 소리가 났습니다. 뱀피는 잠에서 깨었습니다.
"누구지?"
갑자기 뱀피의 눈앞에 밝은 빛이 비춰졌습니다. 뱀피는 눈이 부셔서 얼굴을 가렸습니다.
"어머, 다리를 많이 다쳤네요."
"예, 그러나 그보다 제발 불 좀 흐리게 해주세요."
뱀피가 말했습니다. 소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뱀피의 말대로 불을 흐리게 했습니다.
"잠깐만 있어요."
소녀는 말을 하고나서는 종종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뱀피는 속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쟤가 나를 잡기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부르러 간건 아닐까?? 그러나 뱀피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문소리가 들렷습니다. 소녀의 손에는 약과 붕대가 들려있었습니다. 소녀는 뱀피의 다리를 돌봐주었습니다. 뱀피는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안녕, 내 이름은 예인이라고 해. 넌?"
"난… 뱀피야… 원래 천사였는데… 어제밤에 마귀들과 싸우다가 다쳐서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지."
뱀피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소녀가 자기가 마귀라는 것을 알면 도와주지 않고 도망갈까봐 겁이 났던 거죠. 하긴 마귀 마을에서는 언제나 거짓말을 하곤 했답니다.
"뱀피야, 우리 친구하지 않을래?"
"친구? 친구가 뭔데?"
"친구란… 서로 어려울 때 도와주는 거야."
"그럼 우린 벌써 친구네. 너가 날 도와주고 있으니까."
소녀는 열심히 뱀피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건 뱀피가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뱀피야 넌 배고프지 않아?"
"천사는 밥같은거 먹지 않아."
그러나 사실은 뱀피가 흡혈귀였기 때문에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흡혈귀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피만 먹고 사니까요. 그렇지만 배가 고프다고 자기를 도와주는 소녀의 피를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소녀가 죽으면 아무도 자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날도 소녀는 뱀피가 있는 창고로 갔습니다. 뱀피도 이제는 많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맨날 혼자 창고에 가는걸 수상하게 여긴 소녀의 아빠가 소녀를 따라갔습니다. 몰래 가서 안을 들여다보니, 이런 자기 딸이 흡혈귀와 같이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소녀의 아빠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서는 창고로 들어갔습니다.
"마귀를 잡아죽여라!"
"안 돼요. 얜 나쁜 애가 아니에요."
소녀는 마을 사람들을 말리려고 했지만 힘이 약해서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뱀피는 모기로 변해서 도망간 후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소녀가 흡혈귀를 도와 준 것을 보니 마녀가 틀림없다면서 소녀를 탐에다 가두었습니다.
도망친 뱀피는 소녀에 대한 생각을 잊은채 사람들의 피를 빨아 마셔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던 중 뱀피는 마을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예인이가 마녀라는게 사실일까요?"
"그럼요, 사람들이 마귀를 잡으려고 하는데 말렸대잖아요."
"그래요, 그러고 나니까 요새 다시 마을 사람들이 흡혈귀 때문에 죽었구요."
"그렇지만 예인이가 불쌍해요. 착한애였는데."
"우리도 불태우고 싶지는 않지만 마녀라는게 알려진 이상…."
뱀피는 그제서야 자기를 도와주던 예인이 생각이 났습니다.
"갈까 말까?"
뱀피는 모기로 변하여 소녀가 갇혀있는 탑으로 갔습니다.
"안녕, 예인아."
"뱀피야, 다리는 다 나은 모양이구나."
"응. …미안해 거짓말해서. 사실은 나 마귀였어. 미안해 괸히 나 때문에…. 대신 내가 나갈 수 있도록 해줄게."
사람들의 피를 많이 먹어서 힘이 세진 뱀피는 탑의 벽을 부수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싫어, 난 여기 있을래."
"왜? 너 여기 있으면 사람들이 널 불태울꺼야."
"그치만, 난 내 친구가 사람을 죽이는게 싫어."
"난 네 피는 먹지 않아. 우린 친구니까."
"다른 사람 피도 먹어서는 안 돼."
"하지만 난 흡혈귄걸? 안 그러면 죽는단 말이야."
"거짓말 다른 건 먹어보지 않았잖아."
"알았어. 다시는 사람들의 피를 먹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그러면 사람들이 날 안 죽일꺼야."
"그럼…."
소녀가 안 가겠다고 우겨서 뱀피는 그냥 혼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먹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처럼 밥도 먹어보고, 들에 난 풀도 먹어 보았지만 그때마다 뱀피는 배탈이 났습니다. 그래서 굶기로 했죠. 뱀피는 하루 이틀 야위어갔습니다. 때론 마귀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이 바보 멍청아!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흡혈귀는 사람 피를 먹어야 하는거야."
"너 그렇게 아무것도 안 먹으면 굶어 죽는다고. 그러면 넌 영원히 지옥에 갇히게 될꺼야. 우린 마귀니까."
"너 돌았어? 도대체 왜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하는거야?"
"우린 마귀라고. 아무리 니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이런다 해도 넌 지옥에 간단 말이야!"
그래도 뱀피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굶었습니다. 점점 기운도 없어져갔습니다. 뱀피는 쓰러졌습니다. 그때 눈 앞에서 환한 빛이 보이더니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누구세요?"
"난 예수님이란다."
예수님이라는 소리에 뱀피는 자리에서 업드렸습니다. 마귀를 쫓으시는 예수님은 마귀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사람이었으니까요.
"틀림없이 날 지옥으로 보내기 위해 오신거겠지…."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들고 계시던 잔을 뱀피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게 뭐에요?"
"뱀피야, 너가 사람들의 피를 먹지 않으면 죽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참던 너의 마음이 너무도 아름답구나. 이 잔에 든 것은 바로 내 피란다. 이 피를 마시게 되면 넌 다시는 다른 사람의 피를 먹지 않고도 영원히 살 수 있단다."
뱀피는 예수님이 주신 잔을 받아 그 안에 든 것을 마셨습니다. 예수님은 뱀피의 손을 끌고는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어디로 가는건가요?"
"하느님 나라로 간단다."
"하느님 나라요? 하지만 전 마귄데요…."
"누가 널 마귀라고 하느냐?"
그말을 듣고 돌아보니 어느새 뱀피는 천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천사가 된 뱀피는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에 역시 천사가 되어있는 소녀를 만났습니다.
Image: Sky sunset and clouds by Donald Riesbeck Jr from Public domain images website, http://www.public-domain-image.com/full-image/nature-landscapes-public-domain-images-pictures/sky-public-domain-images-pictures/sky-sunset-and-clouds.jpg.html or Wikimedia Commons, https://commons.m.wikimedia.org/wiki/File:Sky_sunset_and_clouds.jpg in public domain

종교적 색깔이 있는 동화입니다. 이 글은 행복한 결말일까요, 아니면 불행한 결말일까요?
ReplyDelete한번 악인이라고 영원한 악인은 아니라 믿고 싶습니다. 사회의 편견 속에 어느 한 편에서 힘없이 죽어가는 이들이 사후의 세계에서는 행복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