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2, 2020

한 여인

한 여인

업무상 알고 지내던 한 여성, L1이 있었다. 안 지는 오래되었지만, 거래를 한 적도 없고, 그 분의 개인사는 잘 알지 못했다. 가끔 만나면 시장이나 딜 이야기를 하는 정도.

처음 만났을 때, 지병때문에 술을 못한다고 본인이 지병이 있다는 것을 밝혔지만, 젊은 여성에게 어디가 안 좋으냐고 묻는 것은 실례인 것 같아서 구체적으로 어떠 병인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이하는 직접 들은 이야기가 아닌 제 3자에게 들은 이야기들이어서 정확한 사실은 아니다.

L1이 병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중 2때였다고 한다. 일종의 혈액암이라는데 그때부터 투병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녀는 Y1대에 입학하였고,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던 부분 중 하나였다고 한다. 좋은 학교를 들어가서가 아니라, 투병생활 속에서 이룬 성과였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고, 자신의 병 때문에 그녀는 거리를 두었다. 그녀가 병이 있다는 것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자는 결혼을 청했고, 그 마음에 감동한 여자는 그 남자와 결혼을 하였다.

L1은 외국계 운용사 G1사의 한국 오피스에 근무했으며, 내가 처음 만난 것은 그때였다.

밝고 적극적인 인상이었기 때문에 본인이 말하기 전에는 지병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K1공제회 L2팀장과 약간의 불화가 있었다. L1은 사석에서 L2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는데, 누군가 그 말을 L2에게 전했다.

L2는 당장 G1의 대표에게 전화를 해서 앞으로 K1과 거래하려면 L1을 내보내라고 했다.

L1은 헤드헌터를 통해 알아보던 중 외국계 증권사에서 사람을 뽑는다고 했다. 조건이 나쁘지 않아 진행하였고, 구체화되자 국내 K2사였다. 어떻게 K2가 외국계냐고 묻자, K2금융지주의 최대주주가 외국인들이어서 그렇다는 답변을 들었다.

근무지는 입사 후 3개월 정도 준비기간을 거친 뒤 뉴욕의 미국법인으로 가는 것이었고, 현지에서 딜소싱해 오는 자리였다. 외국계냐 아니냐를 떠나서 미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업무강도나 강제적인 회식이나 술자리가 적다는 점은 매력적이었다. 또한, 미국에서 소싱만하면 K1공제회의 L2와 직접 만날 필요가 거의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L1은 무난히 K2에 입사하였다. L1이 옮기고 나서 준 처음 명함이 기억나는 것은 미국법인장인데 주소는 여의도였기 때문이다.

3개월 이후 미국을 갈거라고 했지만, 3개월 후 만났을 때에는 소속이 해외대체투자 부서장으로 변경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도 해외 딜을 소싱할 수 있다며 미국 파견계획이 없어졌다고 한다.

정식 임원은 아니었지만 젊은 나이에 국내 대형 증권사의 임원 대우를 받았던 L1은 이후 회사생활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임원급 중에 영어가 유창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에 다른 임원들 해외출장 때마다 통역을 위해 동행을 하여야 했다. 본인의 일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일로 해외출장이 잦았고, 본인의 일을 할 시간이 없다보니 업무 성과는 좋지 않았다. L1은 동행출장을 안 가고 싶어했지만 그룹에서는 임원들에게 네일 내일이 어디있냐고 그룹을 위한 일이 다 너를 위한 일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잦은 장거리 비행 자체도 몸에 좋지 않았는데, 성과에 대한 부담과 각종 유언비어는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다.

악성루머는 크게 두 가지였다. (1)실력이 없어서 성과도 안 좋다. (2)그러면서 출세하려고 나이든 임원들에게 꼬리치고 다닌다. 자기 일도 아니면서 굳이 따라다니는 이유가 뭐겠냐며, 젊은 여자가 가서 나이든 임원들을 얼마나 구워삶았겠냐는 제 3자가 듣기에도 민망한 말들까지 들려왔다.

L1은 몸이 안 좋아지면서 살도 급격히 빠졌다. 나와 K3는 걱정이 되어서 좀 쉬면서 몸을 추스리라고 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무딘 내가 걱정할 정도면 얼마나 변했는지 짐작이 간다고 한다.

이미 그 때에는 남편과 아이에게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이혼까지 하고 따로 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아픈 모습이었지만,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에게 그마저도 삐딱하게 보였다. 윗사람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심하게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휴직을 하고 입원을 하였다. 그 모습을 가까이는 아니어도 오랫동안 지켜보았던 나와 K3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병문안을 가야 하나도 싶었지만 여성 입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아픈 모습을 안 보이고 싶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으로만 L1의 쾌유를 빌었지만, L1이 다니던 K2증권사 사람들은 여전히 안 그런 사람들도 많았다.

혹자는 나를 찾아와서 L1이 아파서 입원한게 아니라 실적이 안 나오니 챙피해서 휴직한 거라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실적이 안 나와서 문책성으로 휴직을 권고받은 거라고도 하고, 또다른 혹자는 실적은 안나오고 인사철은 다가오니 일단 피해있는거라고 하기도 했다.

지금 부모는 친부모가 아니었고, 수술을 위해 친부모를 찾게 된다. 친엄마와 친언니를 찾게 되었지만, 두 사람은 L1이 대기업 임원인 걸 알고 이런저런 명목으로 천만원 넘게 뜯어가고 정작 수술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 여인의 삶은 막을 내렸다. 마지막 친엄마와 친언니 이야기는 너무 막장같았지만, 그녀의 절친에게 들었던 이야기 그대로이다.

아프지만 밝게 살고자 했고,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더 열심히 살던 한 사람의 삶이 몸도 마음도 상처로 끝나게 되는 것을 보고 들으며 삶이 무엇인가 싶어진다.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친하던 사람과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녀를 욕하던 사람들도 그녀에 대한 애도가 아닌 업계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위해 찾아왔다. 사람들의 그런 모습이 무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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