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이며, 특정 성별의 행동에 대해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대학을 갓 졸업한 무렵, 업계의 한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업계라고 할 만한 규모도 아니었죠. 모임은 업계 전문가 두세 분이 주축이 되어 만들었는데, 당시 해당 업계의 전문가들 전체가 참여한 거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이제 막 시작하는 업계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 모임을 만들고 저같은 사람을 알음 알음 초대를 하였던 거죠.
그 모임은 업무에 진지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빼면 참여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는 않았지만 남자들만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남성들과 구분하기 어려운 소수의 여성들.
그러던 중 모임에 젊고 예쁜 여성 한 명이 새로 참여하였습니다.
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매너 좋고, 재미있고, 유머있고, 아는게 많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모임의 중심이 전문가분들이 아닌 그녀 한 명으로 옮겨갔죠.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월한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은 본능이니까요.
그런데, 그녀가 없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그녀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임의 본질이 흐려지고 분위기가 이상해진 건 그녀가 들어오고 나서인 것은 맞습니다. 그것은 팩트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의 원인이 그녀라고 하는 것에는 심각한 논리적 비약이었죠.
그녀는 그저 젊고 예뻤을 뿐인데, 둘 다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으니까요.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몇 번 나온 후 그녀는 모임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원래 말주변이 없기도 했지만,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녀 주위를 에워싼 사람들에게 밀려 말해 볼 기회도 없었기에 전 더더욱 이유를 알 수 없었죠.
그녀가 안 나오자 사람들은 젊고 예쁜 여자는 남들이 자신에게 잘 대해 주는 것만 즐기고, 끈기가 없어서 수근댔습니다.
***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녀는 제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자신이 나가고 나서 그 모임은 어땠냐고.
갑자기 안 나와서 모두들 궁금해하고, 걱정했다는 인사치레의 말을 하자 그녀는 웃었습니다.
자신이 안 나오자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연락해서 만나자고 한 사람이 반이 넘어서 어떤 분위기인지 잘 안다고.
지나 간 일이니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자기를 찾아오지 않았던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안 나가게 된 이유도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만나자고 했던 그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들은 하나 같이 모임에서 자신만 그녀를 위하고, 모임의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뒤에서 욕을 하고 있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욕하며 그녀가 그런 욕을 먹을 필요는 없으니 모임에 나오지 않아도 모임에서 나온 중요한 이야기들은 따로 만나서 자신이 전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죠.
***
모임에 처음 왔을 당시에도 그녀는 이미 오래 사귄 남자 친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남자 친구와는 다른 사람이니 괜히 아는 척하지 말라는 썰렁한 농담과 함께 말하더군요.)
그녀는 업계나 업무를 핑계로 자꾸 저녁에 1대 1로 만나자고 하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웠고, 지금은 아예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서도 그런 남자들이 있지 않냐고 하자, 지금 있는 곳에서는 자신은 평범한 한 사람이어서 눈에 띄지 않기에 그런 일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
그녀가 말한 그때 남자들을 만나면 또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순수하게 그녀를 업계 후배로 봐서 도와주고 싶었는데 그녀가 공주병이 심했다고 할 지도 모르죠.
진실은 제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사자들도 지나간 의미없는 이야기라고 하기는 하죠.
하지만, 그녀가 모임에 나오고, 모임을 떠나고, 업계를 떠난 것이 남은 사람들끼리 말한 것처럼 그녀가 욕 먹을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이젠 지나간 일이지만, 어쩌면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진행 중인 일일 수도 있죠.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잘 보이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일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너무 부담을 주거나, 뒤에서 상대방 비난을 하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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