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어느 날의 대화 (떠남)
"왜 안되는데?"
그녀가 따지듯 물었다. 내게 따질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사람은 모두 다 언젠가 죽기 마련이잖아. 안 그래? 어차피 언젠가 죽는거 내가 그 시간과 방법을 정하는 게 왜 안되는데?"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모든 생명은 신이 주신 소중한 것이어서? 우리의 생명은 우리게 아니어서? 그것도 아니면, 그래 네 말이 맞네. 잘 가? 무엇인가 말해야 할 것 같지만 아무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말도 않는다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신이 인간세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인간을 너무도 사랑해서, 인간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서라고 말한 건 너잖아."
"어? 그 말을 기억하고 있네."
안 듣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만 떠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기억하냐 아니냐가 중요한게 아니잖아. 이런 말도 안 되는 불공평한 세상도 인간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서 보고만 있는데, 그 자유의지로 그 시간을 조금 당기겠다는 게 왜 안되는데?"
그녀의 말은 그때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는 생각해보게 될 질문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말은 이어졌다.
"내 생각에는 그건 그냥 가진 자들이 사회를 유지하려면 부려먹을 사람들이 있어야 하니까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거야. 신의 뜻이 아닌 사회를 지키기 위한 자들의 위선이지."
"그건 아닐거야. 그저 언제냐라는 단순한 시간의 문제는 아닐꺼야."
"그럼?"
"생명은 소중하니까. 그런데, 자기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겠지."
"생명의 소중함? 넌 생명이나 삶의 소중함을 안다고 생각해?"
자꾸 내게 어려운 숙제를 던지는 느낌. 이런 대화를 벗어나고 싶어진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알까?"
오히려 그녀에게 반문한다. 그녀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아니. 넌 몰라. 그리고, 신이 그렇게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왜 전쟁으로, 기아로, 가난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왜 지켜만 보는데? 그러면서 달랑 한 사람 목숨에는 그렇게 신경쓴다고? 말이 안되잖아."
"그건... 신이 생명을 존중해도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건 맞을 거야. 하지만, 자유를 존중해서 지켜보고, 아무리 큰 잘못도 진심으로 뉘우치면 용서하지만, 돌아오지 않으면 결국 심판은 하지. 신은 인간을 기다리는데, 그런 선택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으니까."
말이 꼬이고 있었다.
"관두자. 너랑 이런 이야기해서 뭐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옷을 툴툴 털었다. 아까와는 다른 표정. 마음이 살짝 놓이며 그녀는 그냥 대화가, 어떤 내용이더라도,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흘깃 나를 본다.
"그렇게 걱정되면 집이라도 바래다 주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가는 내내 말없이 걷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
"난... 그렇게 강하지 않아."
하지만, 강하기만 할 필요는 없어. 강하지 않더라도 힘든 시련과 극단적 선택의 유혹을 힘들지만 하루하루 이겨내는게 쌓이면 그 삶은 훌륭한 삶이니까.
주목나무(朱木, yew)의 꽃말은 비애, 죽음이라는 슬픈 꽃말도 있지만 품위, 고상함, 우아함이라 뜻도 있죠. 힘든 시간과 죽음의 유혹을 넘어 고상하고, 우아함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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